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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으로 북한을 다녀왔는데 그날따라 엄청나게 내리는 빗줄기속에서 군사분계선을 너머 개성공단에 들렀다가 개성시내 유적지 방문을 하고 돌아온 하루의 일정이 마치 꿈속의 이야기처럼 몽롱하고 아련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몇 자 남겨봅니다.
(오전 공단일정 생략...)
8월 11일 개성공단에서 점심식사 후 난생 처음으로 북한시내를 방문하는 기회를 가졌다.
선죽교와 고려박물관 방문이 허용되어 개성시내로 버스 11대가 움직이는데 거리에는 차량을 거의 볼 수가 없고 대부분 자전거와 도보로 움직이는 사람들 뿐이었다. 허름하고 칙칙한 색깔의 옷 차림새는 마치 거리의 노숙자 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고려왕조 400년 도읍지 였던 개성치고는 건물이나 주위환경이 한국의 60~70년대 새마을 운동전의 모습처럼 허름하고 기와집 일천이다. 낡아 허름한 건물들이 개성공단 건설이후 한국인의 방문에 대비하여 약간의 도색을 한 듯 하지만 전체적으로 오래된 집들이다.
도로는 개성입구쪽 현대에서 만든 아스팔트길외에는 시멘트길이고 개성시내의 외형적 모습과 대조적으로 개성남대문 근처 김일성 동상주위는 화려한 위엄을 가진모습이었다. 곳곳에 붉은 색깔의 구호가 도배가 되어 인민들의 의식을 통제하고 있는 듯 하다. 혁명,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을 칭송하는 글들.. 보기에도 섬칫한 글귀들이다.
도로를 달리면서 한국과 비교하여 그래도 수준을 지키는 것은 거리의 가로수인듯 하였다. 대부분 은행과 느티나무 등으로 제법 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가로수 건너 시냇물은 그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울 수 없었다. 동네 아낙네들의 빨래하는 모습은 오히려 정겹다.
군인들이 곳곳에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어려보이는 군인들이 더운날씨에 큰 모자와 군복을 입고 일하는 모습이 애처로와 보이기도 하였지만 더욱 안타까운것은 한국에서 건설장비로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은 이들은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삽으로 파고 막대로 흙을 다독거리고 그리고 보자기와 나무로 만든 운반도구에 물건을 나르고..
아이들은 그래도 천진난만하였다. 낚시를 즐기는 아이, 거리에서 흙을 가지고 노는 아이, 붉은 수건을 두르고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 간간히 손을 흔들며 활짝 웃는 그들에게도 자유의 소중함과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 줄수 없을까 문득 생각 해 보았다.
어린시절부터 반공교육에 의식화되어(?) 북한 주민들이 거의 통제된 생활속에 기계적 생활이라 생각하였는데 모습이 초라하고 사는 곳이 허름하여 그렇지 거리는 활보하는 모습은 그래도 생각보다 자유스러움이 보인다. 전형적인 시골풍경의 모습처럼..
고려박물관은 이전에 국가 최대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을 원형대로 보존하여 내부에 고려유물들을 진열해 둔 곳으로 전력난 탓인지 아니면 생활수준이 그런지 무더운 여름날 내부의 공기가 텁텁하고 탁하여도 에어컨은 상상도 할 수 없고 그나마 선풍기가 간간히 눈에 띄일 뿐이었다.
북측 안내원들은 모두 나름대로 이쁜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문양이나 색깔이 한국의 70년대 풍의 스타일 같았다. 판에 박은 듯 입밖으로 나오는 안내원들의 재잘거림이 어색하게 들려왔지만 그들의 열정은 충분히 감동을 받고도 남음이 있다.
사진을 함께 찍자면 부끄러워 하며 "일 없습네다" (괜찮습니다는 표현) 라고 하고는 결국은 어쩔 수 없는 표정으로 함께 찍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꼭 한국 사람들의 소위 내숭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듯.
선죽교에 들어서니 작은 돌로 된 다리임에 약간의 실망은 있었지만 오랜 역사속의 다리이며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니 오히려 경외감이 들었다. 핏자국이 남아 있다고 하며 보여주는 다리위에는 노란색이 물든 돌일 뿐 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포은 정몽주가 절개를 지키다 죽었다는 역사를 생각하니 엄숙함이 깃든다.
엄격한 시간통제로 한 번 결정된 남한으로 출경시간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데 약간의 당혹감은 있었지만 현대아산 직원들의 철저한 시간통제와 행사통제로 시간에 쫓겨 다니는 하루였지만 시간을 나름대로 맞추어 움직였던 것 같다.
선죽교를 보고 난 후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면서 재촉하는 바람에 모두들 버스에 올라 난생 처음으로 밟아 본 북한 땅을 뒤로한 채 남한으로 향하였다.
아침에 들어올 때 처럼 CIQ를 거치면서 북한군의 검문검색이 실시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디지탈 카메라로 찍은 개성시내 사진은 전부 검사를 통해 삭제되고 아무 생각없이 어떤 사람이 가져온 TOEIC 테이프들도 반입시 발견되지 않았지만 금지품목이라 나갈 때 걸려서 뺏기는 경우도 있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버스에 올랐을 때는 모든 사람들이 긴장이 풀린탓인지 일정에 쫓겨 피로에 젖은 때문인지 한국측 CIQ통과시 까지 잠깐 졸다가 이후 서울로 올 때 까지 거의 잠으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난생처음 개성공단을 방문하였고, 또한 개성시내를 방문하는 행운을 가진 것은 작은 흥분을 가져다 주었지만 북한 실상을 접하고 나서 느꼈던 안타까움과 답답함은 남한으로 돌아온 후도 오래동안 마음속에 남아 맨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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